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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옛이야기 특별전] 효자 최루백
관리자 - 2017.07.17
조회 356
효자 최루백
– 호랑이의 배를 갈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리라!

최루백은 수원 최씨 시조 최상저의 아들로 고려 시대 문신이었다. 조선 세종 14년에 편찬한 《삼강행실도》에 최루백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지극한 효자였다. 최루백의 나이 열다섯 살에 아버지 최상저가 사냥을 나갔다가 그만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고 말았다. 평소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아버지의 변고를 듣고 최루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 제가 당장 달려가 그 호랑이를 잡아 아버님의 뼈라도 찾아오겠습니다. 흑흑.”

“어린 네가 어찌 그 포악한 짐승을 잡는단 말이냐? 아니 된다!”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제가 어찌 하늘을 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간곡히 말렸지만 최루백은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호랑이를 찾고 보니 아버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뒤라 형체도 찾을 수 없었다. 최루백은 호랑이에게 소리쳤다.

“네가 나의 부친을 잡아먹었으니 나도 마땅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이 말을 들은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엎드리자 최루백은 당장 도끼를 내리쳐 죽였다. 그리고 호랑이의 배를 가르고 아버지의 뼈와 살을 찾아 홍법산 서쪽에 장사를 지냈다. 최루백은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무덤을 지켰는데, 어느 날 꿈에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 시를 읊으며 말했다.

가시덤불 숲을 헤치고 효자 여막 당도하니
넘치는 정에 느끼는 눈물 다함이 없구나.
날마다 흙을 져서 무덤에 덮으니
마음을 알아줄 이는 밝은 달과 바람뿐이로구나.
살아서 잘 봉양하고 죽고 나선 지켜 주니
그 누가 효에 처음과 마침이 없다 말하랴.

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세종대왕은 최루백의 효행을 기리는 글을 내렸고, 숙종 때는 효자비를 세웠다.

호랑이를 죽인 바위는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홍법사 옆 야산에 있는데, 주민들은 이 바위를 ‘효암’이라 부른다. 그리고 분천리에 최루백의 효자비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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