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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옛이야기 특별전] 남한산성
관리자 - 2017.07.17
조회 380
남한산성
– 임금님의 곤룡포를 받은 서흔남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청나라 군사들이 한겨울 추위로 꽁꽁 얼어 버린 압록강을 지나 한양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인조 임금은 황급히 강화로 향했다. 그러나 강화로 가는 길은 이미 청군에 의해 끊겨 버린 뒤였다.

“어가를 돌려 남한산성으로 가자.”

인조 임금은 백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이미 강화로 피난 간 왕비와 왕세자에 대한 걱정으로 근심이 가득했다. 산성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했다.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내려 남한산성까지 올라갈 일은 아득하기만 했다.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를 수차례, 인조 임금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신하들이 번갈아 인조 임금을 업고 갔다. 인조 임금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나뭇짐을 멘 한 총각이 다가왔다. 총각은 범상치 않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이 춥고 어두운 시각에 웬 사람들이지?’

“상감마마 행차시다. 짐을 내려놓고 당장 엎드려라!”

한 신하가 호통을 치자 총각이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 쌓인 곳에 임금님이 어인 일이신가요?”

“지금 국난을 당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시는 도중에 귀한 옥체가 추위와 피로에 지쳐서 잠시 쉬시는 중이시다.”

총각은 그제야 위급한 상황을 눈치채고 재빨리 인조 임금 앞에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얼른 제 등에 업히십시오!”

총각은 짚신을 거꾸로 신더니 인조 임금을 등에 업고 미끄러운 산길을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했다. 인조 임금이 총각에게 물었다.

“그런데 신발을 왜 거꾸로 신었느냐? 불편하지 않느냐?”

“적이 따라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발자국을 보고 우리가 산 위로 올라간 걸 알게 될 것이 아닙니까?” 인조 임금은 아둔한 나무꾼인 줄 알았던 총각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저, 저 다름이 아니옵고, 전하께서 입고 계시는 그 옷이 너무 근사해 보입니다.”

신하들은 총각의 무례함에 깜짝 놀랐다.

“그래, 이 옷이 입고 싶단 말이냐?”

인조 임금은 흔쾌히 자신이 입고 있던 곤룡포를 벗어 주었다.

그 총각의 이름은 서흔남이었다. 청나라 군사가 철통같이 포위하여 산성 안과 밖의 교통이 끊기자, 서흔남은 거지 행세를 해 적진을 통과하여 근왕병에게 왕의 뜻을 전하고, 적군의 동태를 보고 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서흔남은 죽을 때까지 곤룡포를 지극정성으로 간수하였고, 죽을 때 곤룡포를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서흔남이 죽자 가족들은 남한산성 서남쪽 병풍산에 그의 무덤을 만들고 곤룡포도 함께 묻었다. 나라에서는 서흔남의 공을 높이 사서, 천인의 신분을 면해 주고 통정대부라는 높은 품계도 내렸다.

후세에 말을 탄 선비들은 서흔남의 무덤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예를 올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서흔남과 더불어 왕의 곤룡포가 함께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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