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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전 《교과서 돋보기》
기간/ 2019.05.29(수) ~ 2019.08.31(토)
장소/ 경기도박물관 상설전시실 입구
경기도박물관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을 기념하여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물을 중심으로 테마전을 개최, 관람객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송시열 초상>은 심의에 흑색복건을 쓴 유복본 초상으로 안면의 채색이나 표현에서 조선 후기 양식이 두루 감지되는데, 특히 얼굴의 단순한 묘사와 달리 의복의 표현은 필선 아래 담묵으로 입체감을 살린 것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시열은 단일 인물 초상화로는 가장 많이 남아있는데 18세기 이후 문묘文廟에 배향되면서 전국의 서원과 영당에 그의 초상을 모셨기 때문이다. 그는 주자朱子 이후 동방의 성현으로 존경을 받은 대학자였으며, 특히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그를 존경하여 직접 ‘송자’라 칭하며 국가의 스승으로 추대하고 그의 문집과 자료를 모아 『송자대전』을 간행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그늘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기 시작한 조선 후기는 학문과 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 송시열(1607~1689)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며 서예가로서 한 시대를 휘어잡은 걸출한 정치가였다.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그의 아들 김집(金集, 1574~1656)에게 사사받은 송시열은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당대 제일의 학자로 성장하였다. 율곡 이이(李珥, 1537~1584)의 학풍을 계승한 기호학파로서 주자학의 신봉자인 그는 주자의 가르침을 평생 따라야할 원칙으로 생각하고 실천하였고, 성리학의 이상을 조선의 현실에 적용시켜 실천해 나간 사림의 지도자였다. 후학들에게는 ‘송자宋子’라고 극존의 존칭으로 불릴 만큼 사림들의 존경을 받은 대학자였다.

인조반정 이후 사림들이 대거 등용될 때 최명길의 추천으로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스승으로 임명되었고,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등극하면서 극진한 예우를 받으면서 정계에 등장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철학을 관철시켰다. 특히 1차 예송에서 기년설을 관철시키면서 서인의 지도자이자 정신적인 지주로 우뚝 섰다. 그 후 좌참찬, 우의정, 좌의정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송시열은 사촌사이였던 송준길(宋浚吉, 1606~1672)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리며 학문적·정치적 동지로 평생을 함께하였다.

조선 후기 명필로서 석봉체石峯體를 토대로 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녹여낸 웅건하면서도 장중한 무게와 기품을 더한 ‘양송체兩宋體’를 창안하였다. 이에 그들을 추종하는 서인세력뿐만 아니라 많은 유림들이 양송체를 사용하였으며, 이후 후학들에게 서법書法의 교과서로 추앙받으면서 널리 사용되었다.

송시열 초상은 2019년 8월 31일(일)일까지 경기도박물관 상설전시실 입구에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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