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

2020년 상설전시 전면 개편

기간
2020.08.04(화) ~ 2025.12.31(수)
장소
1층, 2층 상설전시실




국가근본지지(國家根本之地), 나라의 뿌리가 되는 곳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 ‘경기’의 정체성을 드러낸 말입니다. 천년동안 개경(개성)과 한양(서울)이라는 다른 도읍을 가졌던 두 왕조에서 경기는 나라를 지탱하는 뿌리였습니다. 근대화 이후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서울로 집중되면서 경기는 서울의 종속변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수도권이란 단어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개경과 한양에서는 4대문 안의 왕성(王城)이 고려와 조선의 도읍이었습니다. 이와 비교하여 근대화 이후 4대문을 벗어나 옛 경기 영역의 일정 지역이 서울의 범위로 포함되었습니다. 고려·조선의 경기와 현재의 경기가 그 개념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개경과 한양은 나무와 물에, 경기는 뿌리와 샘에 비유되었습니다. 나무와 물은 뿌리와 샘이 없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는 개경과 한양에 그런 존재였습니다. 조선 건국을 설계했던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나 유교국가로서 그 기틀을 마련했던 권근(權近, 1352~1409), 조선 중기 유학자의 전형이었던 이식(李植, 1584~1647) 등은 시로 ‘경기산하(京畿山河)’를 읊었습니다. 조선의 번영을 상징하는 징표가 바로 경기의 발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기는 국왕이 백성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민본정치(民本政治)의 우선 대상이었고, 그 결과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였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경기


현재 서울이 특별시이듯 고려와 조선에서 경기는 지방행정제도와 다른 특별 구역이었습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시작된 고려시대의 경기제도에서 경기는 왕경(王京)인 개경과 함께 왕경개성부에 속하여 5도 양계로 운영되었던 지방제도와 달리, 물론 고려 후기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의 국무총리실에 해당하는 상서도성(尙書都省)이라는 부서에 직속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경기 역시 지방제도의 하나로 운영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1414년(태종 14) 실시된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도(道)의 경우 충청도·경상도·전라도·함경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 등이 그 행정명칭이었지만, 경기는 경기도라고 하지 않고 단지 ‘경기’라고 하였습니다. 도(道)의 정치·군사·행정·경제 등 모든 것을 관장하던 장관인 관찰사 역시 충청도관찰사·황해도관찰사가 정식 직명(職名)이었던데 비해 경기는 경기도관찰사가 아니라 ‘경기관찰사’였습니다. ‘경기’가 도읍과 지방제도 사이에서 특별한 지역이라는 성격을 반영한 것입니다.



 천년경기역사문화의 정체성


역사문화적인 측면에서 경기도의 정체성에 대해 “정체성이 없다”라는 말들을 합니다. 경기도 문화가 경상도·전라도 등 다른 지역의 뚜렷한 특성에 비해 특징적인 것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경기의 역사문화적인 특성을 잘 알지 못한데서 나온 푸념에 불과합니다. 현재 전국의 물산과 문화 등은 경기도에 모여 여기에서 재생산되어 다시 곳곳으로 재분배되고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경기는 사통팔달의 지역이었습니다. 두 왕조의 문화는 경기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했습니다. 천년의 경기문화는 우리역사문화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경기도에 다문화가정이 많듯이 고려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발해·거란·여진 유민들의 집단적인 귀화를 비롯하여 송·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려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고려 인구의 약 15% 내외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양주에 거란 귀화인들의 마을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경기 주변에 모여 살면서 그들의 문화와 고려의 문화를 융합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에서 표류 및 전쟁 등을 통해 간혹 들어오는 서양인이나 일본인들도 경기에 살며 조선의 문화에 적응했습니다. 이 같은 사회 환경은 경기역사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양성·포용성·개혁성·역동성이 그것입니다.



 

경기도박물관에서 풀어가는 천년 경기역사문화의 이야기


경기도박물관에서는 1996년 개관 이후 25년만에 전시실을 리뉴얼하면서 앞서 살았던 경기인(京畿人)들의 이런 이야기를 현재의 경기도사람들에게 보여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여기가 경기!’라는 슬로건에는 경기도박물관에 오면 천년 경기역사문화에 대한 정수를 볼 수 있다는 우리의 다짐을 담았습니다.


고려시대의 경우에는  “① 천하의 중심 고려, 고려의 중심 경기 ② ‘코리아’의 시작 ③ 새로움이 시작된 곳 ④ 고려인(高麗人)의 삶 ⑤ 또 다른 출발”,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① 경기, 나라의 근본 ② 천혜의 요새 ③ 개혁의 중심 ④ 경기에 모이다”로 그 내용을 꾸몄고, ‘경기 사대부’들의 예술적인 측면을 보다 깊숙하게 들여다보려고 “① 조선의 문화를 이끌다 ② 예술로 꽃피우다 ③ 경기인(京畿人)을 만나다”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경기도 사람들의 근·현대와 선사·고대


근·현대에도 경기도사람들은 역사현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양 열강과 맞서면서도 근대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와는 가장 치열한 항쟁을 전개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산업화의 중심으로, 현재에는 글로벌사회의 주역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기도 근현대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① 근대와 마주하다 ② 근대 사람(近代人)이 되다 ③ 독립을 향한 염원 ④ 경기도의 오늘과 미래”라는 이야기로 담아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이으려 했습니다.


구석기부터의 선사시대, 청동기시대를 이은 후삼국까지의 역사시대, 즉 ‘경기’ 출현 이전 경기 지역의 역사문화는 전사(前史)의 개념을 담아 별도로 담아냈습니다. 선사의 시작을 알리는 “① 경기 땅에 사람이 등장하다”부터 “② 선사시대 경기인의 생활 ③ 권력의 등장, 복잡해진 사회 ④ 마한을 넘어 백제를 세우다 ⑤ 통일국가, 신라”가 그 이야기입니다.



 


기증유물에 대한 이야기


지난 25년동안 수백여명의 경기도민들은 집안 대대로 간직해오던 소중한 문화재를 기꺼이 박물관에 기증해주셨습니다. 박물관 소장자료의 50% 이상이 도민의 기증유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애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상당수는 국가 또는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어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정문화재의 대부분 역시 도민의 기증자료입니다.


새롭게 꾸며진 기증자료실에서는 “모두의 보물이 되다”라는 주제로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① 새로운 출발, 혼례” “② 집안의 경사, 과거 급제”의 이야기에는 새롭게 출발하는 경기도박물관의 다짐을 담았습니다.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것을 꺼내놓기 보다 애틋한 사연을 품은 소박한 자료로 그 이야기를 소개하여 기증자들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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