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갈의 무덤에서 나온 지석
오석으로 만든 지석으로 모두 2장이다. 옆면에 건(乾), 곤(坤)을 적어 순서를 표시했다. 첫 장에 ‘조선국 통정대부 나주목사 기계유공 휘 한갈 자 여수 묘지명 증숙부인 인동장씨 부좌朝鮮國通政大夫羅州牧使杞溪兪公諱漢葛字汝水墓誌銘 贈淑夫人仁同張氏祔左’라 적었으며, 앞뒤에 모두 글씨를 새겼다. 유한갈이 사망한 시기와 그의 집안 내력, 관직 활동 등을 기록하였다.
유한갈(兪漢葛, 1722-1795)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여수(汝水)이다. 아버지 유언탁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나, 숙부 유언전에게 입양되어 가문을 이었다. 26세에 진사가 되었고, 35세에 관직에 진출하여 나주목사, 용인현령, 충주목사, 남원부사 등 총 18개의 관직을 30여 년간 역임했다.
유한갈의 부인 인동 장씨(仁同張氏, 1723-1787)는 한성판윤 장태소(張泰紹)와 전의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유한갈과 혼인한 뒤 여러 지방관직을 맡은 남편을 따라 고을을 전전했지만, 청탁을 받지 않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집안에서 부인의 도리를 다하고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의 지석에 쓰인 글은 모두 형조참의를 역임한 유한준(俞漢雋)이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유한지(兪漢芝, 1760~?)가 쓴 것이다. 지석의 첫 장은 유한갈이 평생 연마했던 예서로 쓰였는데, 이는 지석에 예서가 사용된 드문 사례이다. 본문은 위진시기 초기의 서체와 닮은 해서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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