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복 초상(시복본)
보물 제1298호
조영복(1672~1728)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이지당(二知堂)입니다. 조영복은 숙종대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노론에 속했습니다. 현재 조영복 초상은 유복본과 시복본 2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은 조영복의 어진화사인 진재해가 그린 시복본 초상입니다. 화면 오른쪽 윗부분에는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쓰여 있습니다.
진재해가 그린 초상은 조영복이 유배에서 돌아온 해에 제작되었습니다. 비단 바탕에 섬세한 채색으로 표현된 인물은 관리의 신분을 보여주는 시복(時服)을 입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 위편에 글이 있어 주인공의 신분과 그림을 그린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진재해의 그림은 18세기 초 공신상功臣像의 양식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얼굴의 왼편을 드러냈고, 신체는 거의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옷의 옆트임은 전시대에 비하여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사모는 다소 높아졌습니다. 초상화의 배경으로 사용되던 채전彩氈은 더 이상 그려지지 않습니다. 얼굴의 묘사는 조영석의 그림과 거의 유사합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발문이 있는데, “개성부유수 이지당 조공의 오십사 세 화상 진재해 그림(開城府留守二知堂趙公五十四歲畵像 秦再奚寫)”이라고 하여 진재해가 1725년에 그렸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았고, 두 손은 공수하였으며, 흉배가 없는 관복인 시복(時服)을 입고, 삽금대(鈒金帶)를 둘렀으며 오사모를 썼습니다. 바닥에는 돗자리가 없고, 족좌대가 높고 넓은 점, 높은 오사모의 형태 등은 18세기 전반의 초상화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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